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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메세지_Healing Message For You

주의 길을 예비하라_Prepare the way of the Lord

by 말씀과 기도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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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이란 뜻. 예수께서 빌라도 관정에서부터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을 일컫는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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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은혜 나누실 말씀은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아멘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 복된 소식 -즉- 기쁘고 좋은
구원의 메시지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할

소임을 받은 자가 있었는데,

바로 세례요한 입니다


세례 요한이 살던 곳은

광야이었습니다.

 

그는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광야에서

죄 사함을 위한 회개를 부르짖고

세례를 행했을 때,

 

놀랍게도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있는 곳에

구원 얻을 사람이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광야 든 사막 한가운데라도

진리는 살아서 이를

갈구하는 사람을 채우는 것입니다.

 

교통수단이 편리했던 시절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갔습니다.

 

동물의 털을 몸에 걸치고

냄새나는 가죽띠로 허리를 두르고

곤충이나 이끼를 먹고

살아갔던 요한이었습니다.

 

이렇다 할 거처도 없고

볼 품 없는 외모를 한 그가

밤낮으로 쓴소리를 쏟아내었습니다.

 

 당대의 지식인이며

사회적 지위가 존엄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도

독사의 자식이라며 힐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자신의 지위와 이익을 위해서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게 한 배후세력이었습니다.

 

이 거침없는 세례 요한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특이할 만한 반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거친 광야까지도 찾아와

그의 외침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 갔으며,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까지 죄 사함을 얻기 위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만큼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리가 간절했던 겁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세례 요한이 메시지를 전파하기까지

약 400년 간의 암흑시대를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간절했던 겁니다.

 

세례 요한이 주의 오심을 전할 때

자신의 한계성을 명확히 했다는

것도 주목할 일입니다.

 

겸손히 예수를 증거 했고

또한 구속사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하는

모퉁이돌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이 말을 통해

요한은 자신의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반면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우리가 주의 길을 예비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겸손히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설파하는 겁니다.

 

나의 사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나의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

우리 인생들에게 향하신

그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의 복음을 전할 때

그곳이 어딘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시는

주의 뜻을 전하는 일은

 

주를 믿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할 때,

 

그곳이 비록 광야일지라도

분명 복음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듣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자기 죄를 자복하고

예수께 속한 자가 됨으로써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6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례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상징적인 사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냈던 요한과 같이,

 

나도 주의 일에

헌신을 하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사심을 두지 않고

주의 일에 헌신을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물질문명에 길들여진

우리가 이를 시도하는 것은

너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빙자한

주의 일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주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헛수고이며 가증한 일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목회자뿐 아니라

주를 믿는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고

 

많은 생명들을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우리가 서 있는 곧바로 거기서

주의 구원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물질문명과 미디어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복음을 다소 고루하게 여긴다고 해서

 

 복음 전하기를

쉴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을 어떻게 판단하든지,

 

온갖 죄로 더럽혀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그 모든 죄의 무게를 견뎌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과,

 

이를 믿고 삶으로

주께 회개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진리는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엎드립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이렇게 해서 먹고는 살 수 있을까 등의 모든 두려움을 떨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를

 

담대하게 증거 하는우리가 되도록 도우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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